2020. 4. 24. 3:39 작성된 글
이전 블로그에 비공개 되어있던글 옮깁니다.
우리에게는 이틀이라는 여행이 생긴 셈이었다.
압력때문인지 배가 너무 불러왔다. 마치 풍선을 불어 놓은듯 배가 빵빵하게 느껴졌다. 입고있던 래깅스가 조여왔고 배가 아팠다. 래깅스를 팬티라인까지 내려 배를 느슨하게 해보려고 했지만 입고 있는 래깅스를 벋지 않는이상 힘들었다. 게다가 난 기내에서 아직 먹은것도 없는데 배는 부풀게 느껴지며 이상하게 배고픔이 느껴졌다.
비행기가 이륙하자, 작은 샌드위치와 음료서비스를 받았다. 배가고파 그것들을 허겁지겁 먹었다. 그러니 부풀어있던 풍선에 억지로 바람을 더 넣은것처럼 배가 터질것만 같이 힘들게 불편했다. 화장실은 많이 가지 않았지만 배가 부풀어있는 이 느낌이 너무 불편해 한숨도 못자고 런던땅에 도착하고 말았다.
오후 5시가 되고 나서 호텔에 도착하고 나니, 갑자기 속이 울렁거리며 또 배고픔을 느꼈다. 분명 배가 엄청 불러있는 느낌인데 왜 자꾸 배고픔을 느끼는건지.. 지금 생각해보면 입덧이 시작되고 있었던것 같다. 이때 뭐라도 입에 넣지 않으면 속이 울렁거리고 쓰린, 입덧이 시작될까 두려웠다. 촌스럽지만 혹시몰라 가져온 비상용 작은 삼양라면 컵라면을 부랴부랴 뜯어 호텔방에서 단 1분만에 흡입을 했다. 비상용 한개뿐이라 남편에겐 나눠주지 못했다. 그렇게 먹고 나니 입덧이 조금 사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몇분도 안되서 조금만 쉬다가 저녁을 먹으러 가자고 했는데, 어떻게 누웠는지도 모른체 다음날 아침까지 잠을 자고 말았다.
런던에서의 일주일은 정말 모험이었다. 도착 첫날부터 가벼운 입덧이 시작되었고 틈만나면 배가 고팠다. 자꾸 인스턴트가 땡기고 한국라면이 먹고 싶었다. 도착한 첫날은 속이 안좋아 호텔방에만 있었는데 라면생각에 지하철을 타고 한인마트를 찾아갔다. 런던시내를 돌아다녀야 하는 내 여행은 어디갔을까? 한인마트를 찾아 드디어 작은 컵라면을 몇개사서 호텔로 돌아올수 있었다. 고작 2시간 정도 지하철을 타고 여기저기 걸으며 한인마트도 다녀왔을뿐인데 내 체력은 바닥이 났다.
호텔로 돌아오기전, 조금 쉬어야 겠단 생각에 작은 카페에 들어갔다. 카페인이 없는 차를 마셔야 하는데 죄다 카페인이 들어간 차 뿐이라, 그냥 따뜻한물에 레몬만 담아 달라고했다. 종업원은 그런거 없다며 그냥 홍차에 레몬을 띄워서 가져왔다. 한모금 마시고 주변을 둘러보는데 옆 테이블에 영국 할머니들이 앉았다. 그래, 여기 영국이지? 조금이라도 영국을 느껴보자, 하는찬라 내 맞은편에 앉은 할머니 입에서 충치냄새가 진동했다. 정말 깜짝놀랐다. 그 냄새를 맡다니. 할머니는 쉬지않고 말을 계속했는데 충치냄새에 도저히 앉아있을수가 없어 카페를 나왔다. 하필 보슬보슬 비까지 내려 가져간 우비를 뒤집어 쓴채 호텔로 돌아와야 하는 힘든 시간을 보냈다. 사진은 커녕 날씨도 별로인 런던을 실감하는 날이었다.
도착하고 다음날 시티를 다녀온 이후 매일매일 비가 내렸다. 우중충한 날씨, 습하고 바람부는 이 런던의 날씨는 정말 듣던데로 런던다웠다. 난 런던에서는 못살겠네 싶었고 두번다시 런던여행은 안가도 될것 같았다. 그렇게 남편이 일하는 4일 내내 여행은 커녕 호텔방에 누워 룸서비스로만 허기를 달래고 호텔근처만 돌아다녔다. 정말 아무것도 없는 뉴욕의 월스트리트 같은 곳이었지만 딱히 멀리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주말이 다가와, 드디어 여행아닌 작은 여행을 해보기로 했다. 남편과 돌아다녔는데 시내를 돌아다니고 유명한곳을 보는것도 재미가 없었다. 뉴욕의 10분의1 화려함을 가진 런던이었고, 뉴욕에 살아서 그런가 모든게 비슷해 보였다. 하필, 여행 마지막날은 몸살끼가 있어 너무 괴롭기 까지 했다. 아침에 공항으로 가는 이른시간 때문에 늦게까지 잠을 못자니 그또한 더더욱 괴로웠다.
뉴욕으로 돌아오던 비행기안, 런던 승무원에게 임신사실을 얘기하자 내 배를 보더니 임신했지만 여행오지 않았냐고 했다. 무슨 말을 저렇게 하지? 라는 생각에 미국에서 올때는 괜찮았는데 입덧이 시작되어서 힘들다고 비상구 자리를 달라고 했지만 정말 자리가 없다며 미안하다는 말만 언급했다. 게다가 티켓 자체를 지정석으로 못해서 남편과 떨어져 앉아야 하는 최악의상황. 그럼, 붙어 앉을수 조차도 없냐 묻자, 그 또한 만석이라는 말만 했다.
어쩔수 없이 비행기에 올라 사람들 사이에 끼어 앉았다. 이코노미를 사서 당연한건데 내가 임산부혜택을 받으려고 했던것이 부끄러웠다. 하지만 뉴욕에서 올때는 그냥 한번 물어본것이었고, 이번엔 진짜 비상구쪽이 필요했다. 몸살끼와 입덧까지오는 증상에 화장실까지 자주 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7시간을 어떻게 버티나.. 생각하는 그순간, 심하게 목이 마르기 시작했다. 물은 필수로 사서 들어왔어야 했는데 그마저도 까먹고 말았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이륙직전, 목이 순간적으로 심하게 건조되면서 물이 정말로 간절하게 필요했다. 승무원들은 보이지 않았고 나는 당황했다. 남편도 옆에 없는데 진짜 너무 서러웠다. 그러자 곧바로 폐렴처럼 기침을 하기 시작했는데 옆에 앉은 여자가 나를 쳐다봤다. 당연히 옷속으로 기침을 했지만 기침은 멈출생각을 하지 않았다. 코로나사태가 시작되기 전이어서 다행이었지 지금 그렇게 공공 장소에서 기침했다면 생각만해도 끔찍했던 순간이었다. 그런데 나를 살려준건 바로 사탕이었다. 내 주머니에 있던 호올스. 전날밤 몸살끼에 목감기 느낌이 있어 편의점에서 샀었던 호올스가 구세주가 되었다. 이젠 이 경험으로 나에게 사탕과 물은 필수가 될것이다. 기침을 하다 미친듯이 사탕을 까서 입에 넣으니 한결 나아진 그때의 그 기분. 지금 생각해도 눈물이 찔끔나는 순간이었다.
화장실을 가며, 지나가던 남자승무원을 불렀다. 임신사실을 알리고 저기 비상구쪽에 자리가 하나 비어있는데 옮길수 있으면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그 승무원은 내 자리가 어딘지를 물어보며 손바닥에 내 자석번호를 적었다. 최선을 다하겠다고 곧 알려주겠다며 바쁘게 움직였다. 역시 여자는 남자한테 부탁하는게 더 낫다. 내 철학이다. 그렇게 10분후, 비행기가 이륙하자 남자승무원은 나에게 왔다. 그렇게 남편과 더 떨어진 곳으로, 나 혼자만 자리를 옮겼다. 비상구 쪽에는 노인이나 임산부 아이동반 사람들만 앉는거라 생각했는데 멀쩡해 보이는 60대 남성 두명이 창가쪽 비상구에 있었다. 비지니스 하는 사람들인지 7시간 내내 일얘기를 너무 큰소리로 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었다. 그정도로 돈이 많으면 왜 이코노미 탔는지 정말 짜증이 났다. 그리고 반대쪽 창가쪽에는 건장해 보이는 남성들 두명이 앉아있었다. 그냥 키가 큰 건장한 남성들.. 비상구쪽엔 말그데로 비상시에 도움을 줄 건장한 남자를 앉힌다고는 들은바 있지만 그 조합은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이상했다. 체크인도 일찍했는데 왜 임산부인 나보다 그들이 거기에 앉아있는건지. 내가 앉은 가운데 세자리에는 키가 2미터는 되어보이는 남성과 그냥 나랑 똑같은 평범한 여자가 앉아있었다. 키큰 남성은 다리가 길어 그렇다 치고, 이 여자도 임신했나? 궁금했지만 끝까지 물어보지는 않았다.
7시간 동안 화장실을 10번 이상은 간것 같다. 기분이 그래서 그런가 자꾸 오줌이 마렵고 참을수가 없었다. 오줌이 많이 나오는것도 아니고 찔끔 찝찝하게 나오는데 정말 참을수없었다. 게다가 뉴욕에서 올때랑은 다르게 목이 너무 말라 물을 정말 많이 마셔야 했고, 그 이유도 한몫했다. 틈만 나면 목 부분이 건조해지고 간지러워져서 물을 마셔야 했다. 목을 축이기도 해보고, 최대한 참아도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화장실을 너무 많이 가자 내옆에 키큰 남자가 다리를 자꾸 오무렸다 폈다가를 해야했다. 너무 미안했다. 다리가 기니까 쭉 피고 있었는데 나때문에 자꾸 다리를 접었다. 자는줄 알고 몰래 넘어갈라고도 해봤지만 어떻게 알았는지 또 다리를 접었다. 부담스러웠다. 임신 사실을 알리고 이해시키고 싶었지만 그게 더 이상해서 말을하지 않았다. 민망하고 챙피했지만 어쩔수없이 7시간을 버텨야 했고 엉덩이도 아프기 시작했다. 허리도 아파 정말 울고싶을때 남편이 화장실을 가다가 나에게 인사를 했다. 남편 얼굴을 보니 서러움이 폭팔했다. 눈물을 그렁그렁 달고있었지만 눈치없는 남편은 그걸 못보고 손을 흔들며 사라졌다.
그렇게 뉴욕에 도착하니 기나긴 입국절차를 또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뉴욕 JKF공항의 서비스는 그야말로 최악. 무엇을 기대했건 최악의 공항을 만날테니, 여행후 공항을 빠져나오는게 제일 힘든일이다. 강아지를 일주일동안 봐준 친구네집에 오후 6시 전에는 도착해야 하는데 7시가 넘어서 도착하게 되었다. 저녁을 함께 하자 했지만 내 몸상태는 정말 최악이었다. 금방이라도 쓰러져서 잘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남에집에서 거지꼴이 다된 우리 강아지를 만나니 슬펐고 빨리 집에가서 자고 싶었다. 친구들에겐 조만간 만나자고 약속한뒤, 우리는 재빨리 집으로 향했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더럽게 씻지도 못하고 기절하고 말았다. 다음날 오후까지..
사람마다 정말 다르겠지만, 임신사실을 모르고도 해외여행을 가서 놀다온 사례들이 많다. 맘카페에서의 개인의 경험은 믿으면 안된다. 나는 예민했던 탓인지 모르겠지만, 모든것들이 일찍 시작되었다. 임신 사실도 예민하게 느꼈고 입덧도 빨리 시작되었다. 4주에서 5주 사이에 이런 증상들을 느끼는 케이스는 검색해서도 별로 없고 주변에서도 별로 듣지 못했다. 내가 그냥 그렇게 느껴서 생각해서가 아니라, 내 몸이 반응하니 인정해야 했고, 사실이었다.
작년11월 임신전에 몸상태를 체크하기 위해 들렸던 오피스에 예약을 했다. 런던을 다녀왔을때는 5주가 지난뒤라 7주 차에 맞춰서 예약을 했다. 임신 여부를 알고 아기집 점박이라도 보고 오려면 그때 오라고 해서 그때 맞춰 예약을 했다. 피검사로 임신인게 확실했지만, 아직 초음파를 보지 않았기때문에 조금은 조심스러웠다. 7주1일이 되었을때, 병원을 방문하였고. 점보다는 조금 더 자란 올챙이 형태의 우리 아기를 볼수가 있었다.
초음파 사진은 정말 별로였다. 화소도 별로였고, 같은 모습의 사진을 5장이나 뽑아서 줬다. 그래도 이 사진한장이 어찌나 귀하던지. 병원에서는 비디오든 사진이든 촬영이 금지되어있어 이 사진이 정말 귀했다. 남들은 점 만 있는것을 처음 으로 갖고있을텐데 난 올챙이 같은 사진이 첫사진이었다. 심장소리도 기대 했지만 뛰고있는 그래프를 보여줬지 들려주지는 않았다. 한국에선 다 들려주던데, 이곳에선 태아에게 안좋다며 소리는 들려주지 않고 그래프만 보여줬다. 16주 인가 좀 지나면 소리를 들려줄거라고 했다. 모든게 정상이라는 말과 함께. 임신 사실을 정확하게 이렇게 보고나니 감격의 눈물이 났다. 신랑도 멍하니 한참동안을 화면만 바라보았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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