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도착후 예약이 바로 되지않아 1주일뒤 병원에 방문하였다. 그때가 정확히 12주가 되는 날이었다. 미국에서 한국오기전, 피검사를 통한 니프티검사 (NIPT) 를 하고 왔다.
한국에서 가격대가 좀 있어 알아보니 미국에서도 $600불 조금 넘었던거 같다. 젠장 보험이 있지만 그렇게 커버가 좋은게 아니라 그정도 인건지 아님 보험 없는 사람과 같은 가격을 낸건지 모르겠다. 남편 회사 보험은 Cigna(시그나) 라는 보험인데 해택이 그렇게 좋은거 같지는 않다. 일년에 3천불인가 이상 사용할 경우 올 커버라고 하니 그 이전 가격은 우리가 고스란히 내는 상황. 물론 그만큼 병원비로 1년동안 나가는건 없지만 말이다.. 결제도 바로 되는게 아니라 병원방문후 그냥 집에 오면 집으로 고지서가 날라온다.
그러니 병원비가 얼마인지는 알고 진료보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봐야하는 상황. 헐...
한국도착후 첫 산부인과를 방문 하였는데, 나중에 출산시 도와줄 선생님으로 택했다. 첫째를 분만했던 병원이고, 같은 선생님이 안계셔서 다른 선생님을 만났다. 초음파를 보는데 선생님이 조금 바쁜 손놀림으로 성별 미국에서 딸이라 그러죠? 그렇게 말씀하시는거다!
뒤에 환자가 많이 밀려계셨지만 미국에서 온 상황을 아시니 잘 봐주셨다.
너무나 기뻤다.
그럼그렇지! 그럴줄 알았어. 이렇게 입덧 심하더니..
"정말이예요?" 라며 기뻐했다.
그리고 나서 집에온 그날 저녁, 미국에서 이메일이 왔다. 니프티검사 기록 중에 성별검사가 벌써 나오다니.
그런데 왠일. SEX 성별에 정확하게 Male 남성이라고 적혀 있었다. 게다가 성별 기호까지.. 남아 였다... 첫째때 아들을 원했어서 아들인거 알고 올레! 소리지르고 좋아했었는데 둘째는 딸이길 바랬것만... 아들인것이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또 아들을 이나이에 임신했을까. 남편 좋은일만 또 시키는구나.. 슬펐다.
주변 친한 친구들한테 딸이라고 다 문자했는데 이럴수가!!
딸이기에 지금까지 아팠던거 보상받는 기분이었는데 이럴수가!
아니 그럼 산부인과 선생님은 도대체 왜 딸인거 같다고 미리 선수를 쳐서 사람을 이렇게 좋다 말게 만드신거지? 차라리 첨부터 그냥 아들딸 모르고 아들인거 알았어도 첫째도 아들이니 형제 만들어 주니 좋았을것을...
출국전 초음파 한번 더 보러 방문하며 비상약 받는데, 그때 이야기를 하자, 고추가 보인다며 죄송하다고 가끔 그렇게 안보이다 보이는 경우가 있다고 하셨다. 아들이었다 딸이 되는 경우는 없을텐... 아들이구나...
임신을 알게된 그 순간부터 한주한주가 어찌나 시간이 안가는지 이건 정말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느낄것같다. 어떻게 보면 차라리 조금은 늦게 알았으면 시간이 더 빨리 지나갔을법한 임신초기 증상들.
첫째때는 거의 7-8주쯤 알았는데 이번엔 5주째 부터 말도 안되게 감이와서 훨씬 더디게 느껴지는 임신과정.
어느순간 기침이 시작되었다. 처음엔 단순 감기 처럼 왔다. 첫째가 어린이집을 다니면서 잔병치례를 좀 했는데 그러면 나도 꼭 아프곤 했었다. 임신확인순간부터 내 몸은 벌써 약해지고 있었다. 감기가 잘 걸리지도 않는 스타일인데 목감기가 제대로 왔다.
그러다가 말겠지. 하고 몇일을 보냈다.
첫째는 약먹고 금방 나아졌는데 나의 기침은 더 심해졌다. 한두번 켁켁 거리던 기침이 연달아 콜록콜록이 되었고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꺽꺽 거위 소리가 나는 기침을 연달아 하기까지 얼마 걸리지 않았다.
콧물이 코를막아 숨을 쉬기 어려웠고 입덧도 심한데 감기까지 걸려 먹지도 못했다. 요리꽝인 남편의 음식을 먹으며 버텼지만 2주후 한국을 가니 조금만 참자.. 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움직일수있었고 돌아다닐수 있었지만 어느순간 그럴수가 없었다. 꼬박 침대에 누워 타이레놀을 먹으며 버텼다. 진짜 타이레놀을 먹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엄청 고민했는데 초기 임산부 라면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나는 타이레놀을 매일 1알씩 먹어야했다. 하루는 39도 까지 열이 올라 먹어야 했고 하루는 기침에 폐가 너무 아파 먹어야 했다.
그렇게 비행을 앞둔 며칠전, 자고 일어났는데 가슴통증에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너무 기침을 해서 가슴에 근육통이 온것 같았지만 무서웠다. 미국특성상 병원을 쉽게 가지도 못하니 참았는데 도저히 안되겠어서 병원을 갔다. 그런데 의사도 임산부라 딱히 약도 못쓰고 정 그러면 오늘 방문한 비용은 받지 않을테니 응급실을 가라고 했다. 왜 그런거 같냐니까 알수없다는 돌파리들. 엑스레이 찍어봐야 한다고.
코로나, 독감 검사 했는데 아니라고 나오니 더더욱 이상하게 생각이 들었다. 만약 두가지중 하나라도 걸렸으면 비행도 취소할 상황이었는데 그렇게 가슴을 부여잡고 힘들게 병원까지 갔는데 아무런 성과없이 집에돌아와 눈물로 밤을 지새우며 타이레놀을 먹고 잠이 들어야 했다.
그렇게 한국에 도착했다. 비행기를 어떻게 탔을수 있었는지 정말 대단했을정도로 정신력으로 버텼고 비행기 내내 마스크 안에서 기침을 컥컥 해가며 10시간을 날라왔다. 다행히 가운데 좌석에 사람이 앉지 않았고 나는 맨 앞자리 노약자석에 앉아서 앞에 사람도 없었고 창가쪽에 앉았다. 남편과 아들은 뒷좌석..
내 옆자리는 다 비워져 있었는데 어떤 이상한 아저씨가 냅다 자리를 바꾸는 바람에 그 아저씨의 냄새가 너무 역겨웠다. 더럽게 트름하고 나름 아가씨 처럼 보이는 여자가 옆에 앉아있으니 힐끔힐끔 나의 행동들이 움직일때 마다 관심을 갖는게 너무 싫었다. 그렇게 불편한 비행을 하며 한숨도 못자며 기침만 하는 나는, 도저히 안되서 남편과 자리를 바꿔 남편을 푹 자게 해주고 뒷자리에서 아들을 제웠다.
남편은 도대체 비행만 하면 약먹은 사람마냥 시들어 버리고 잠만 잔다. 대단하다. 낮 비행기인데도.
아들에게 해드셋만 끼워주고 몇시간째 그러고 있으니 너무 짜증이 났다. 자리를 바꾸고서 아들을 힘들게 제우고는 나도 눈을 조금 감았으나 기침이 심해 이도저도 못하는 비행을 눈물을 머금으며 해야 했다. 마음껏 기침도 못하니 목을 최대한 조여 하는 기침이라 너무 힘들었지만 사람들이 싫어 할수있으니 어쩔수없었다.
나는 양반이었다. 대놓고 마스크 없이 기침하는 사람들이 왜이렇게 많은건지.
한국에 도착 하고 나는 다음날 바로 병원을 갔다. 산부인과 에서 처방해 주는 약을 일주일이나 먹었는데 아무런 호전이 없어서 이비인후과를 갔다. 그곳에서도 아무런 대답을 얻지못해 나를 엑스레이 찍어봐야겠다며 엑스레이 전문 내과로 소개를 해주었다.
그렇게 나는 근처 엑스레이 CT전문병원에 가서 임산부임을 밝히고 배에 무겁고 말랑한 보호대를 두른체 엑스레이를 찍었다. 의사는 내 사진을 보더니 폐에 뭐가 있는거 같다며 염증 같다고 큰 병원을 가보라 했다.. 그때 부터 무서웠지만 이곳에서 마저도 약을 주지 않았다 ㅠㅠ
대학병원은 예약할수가 없어 몇달뒤나 된다고 해서, 서울에 있는 강동경희대병원에 예약을 했다. 다행히 1주일뒤 자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호흡기내과에 예약을 해두체 나는 기다릴수가 없어 조금은 시내인 나름 큰 병원을 다시 찾았다. 일반 내과 진료를 예약했는데 여의사가 혼잣말로 임산부라 뭘 써야 하나.. 믿음이 가지않는 소리를 자꾸 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항생제를 먹어야 한다며 임산부가 먹을수있는 항생제가 많이 없다고 처방을 해주었다. 그렇다. 나는 폐렴이었다.
피검사를 하니 드디어 염증수치가 나왔고, 조금만 더 늦게왔음 합병증으로 더 크게 문제가 되서 입원해서 치료했을지도 모른다 했다.
그렇게 5일치의 항생제를 먹고 나니 기침이 잦아들었고, 총 10일 정도의 항생제 치료로 내 폐렴은 사라졌다...
그리고 나서 나는 폐렴이라는 병을 알게 되었다. 그저 잦은 기침이 이렇게 폐렴이 될수도 있겠구나 너무 무서웠다. 단순 기침이라도 3-4일 이상 지속되면 무조건 병원에 가야하는것도, 또 기침을 계속 하게 되면 폐와 장기에 무리가 갈수도 있겠구나 하고..
항생제아님 치료가 안되는 거라 먹을수 밖에 없었지만 내가 당장 아파 죽게 생겼으니 어쩔수가 없더라..
그렇게 나는 한국도착 임신 11주 부터 거의 13주가 되기 전까지 2주동안 병원만 다녔던거 같다.. 그리고 나서 나머지 2주후 다시 하와이로 돌아와야 하는 나는, 산부인과와 내과를 다시 방문해 혹시나 모를 약들을 처방받아 왔다.
한국의 의료는 정말 최고다. 그 마저도 사람들은 너무나 모른다. 조금만 아파도 병원가는 그 문화도 어쩌면 그렇게 생겼을지 모른다. 아이들 조금만 아파도 소아과를 가니 소아과 줄이 미어터지고.. 그러다 보니 정작 치료를 받아야 하는 사람들이 왜 치료를 받지 못하는지도 알겠다. 나도 처음엔 아이가 콧물만 나도 한국방문하면 소아과를 꼭 갔었는데 이젠 안간다. 병원을 더 다니는 아이들보다 아닌 아이들이 더 건강한거 같다고 하와이 살아보니 느껴지더라.
임신한 상태로 초기부터 이러한 이슈로 너무 아팠지만 다행히 폐렴은 사라졌고 기침도 사라졌다. 내 인생에서 그렇게 까지 기침을 해본게 처음이었고 결론은 무조건 병원가서 항생제를 먹어야 한다는거.
미국에선 기침이 심하면 임산부들은 이 약을 먹어볼수가 있다. 일반 약국에 다 판다. Robitussin
미국 산부인과에 전화해서 말했더니 이거 먹으라고 하더라. 한국이면 감기약도 처방해 주는데 역시 미국은 그런거 없다. 이거 먹으면 괜찮다고 후기도 읽었는데 나는 두통이나 먹었는데 나아지지 않았다. 역시 폐렴이라 그런거다. 일반 감기 때문에 걱정이면 이거 먹으면 될거 같다. 누군가가 검색해서 임산부 감기 두통 몸살에 힘들어 한다면 이 약을 먹고 열이 심하거나 너무 힘들면 타이레놀을 먹으라고 말하고 싶다. 단!!! 타이레놀도 500mg 짜리로만 먹어야 한다는거! 아세트아미노펜 으로 !!
첫째때는 코로나여서 밖에도 못나가고 그랬던 지라 감기조차 안걸렸던거 같은데 둘째는 초반부터 너무 힘든 시간을 보낸거 같다. 셋째는 없을 거니까 누군가가 임신을 한다면 정말 마스크 꼭 쓰고 아니면 초기엔 정말 정말 조심하라는 말을! 이제야 실감하게 되었다. 한국은 그렇지만 미국에서 특히나 하와이에서 마스크를 쓰고 다닌다는건 쉽지가 않다. 배도 안나왔는데 임산부면 모를까..
한국도 이제 마스크 안쓴다고 아주 길거리에서 기침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식당에서도 그렇고 정말 왜들 그러는지. 그렇게 힘들고 위험하고 무서웠던 시절들을 다 잊은거냥.....
임신 14주 까지는 심한 변비가 이어졌다. 다이어리에 변을 본날은 '배변성공' 이라는 글귀를 적기 시작했는데 한달동안의 배변상태를 한꺼번에 볼수있어서 좋았다. 임신을 하니, 변을 본것을 다이어리에 체크할만큼 이렇게 중요하지 않을수가 없다. 이전에는 몰랐던 몸에변화, 그리고 작은것들을 기록함으로써 내 몸과 태아의 상태를 평균적으로 더 잘 알수있는것 같다. 이런 변화들로 인해 내가 임산부임을 되새기게 되는거겠지..
아직까지도 난 내가 임산부라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임산부임을 별로 느끼지 못하는게 사실이다. 코로나 사태로 집밖을 자유롭게 나갈수 없다보니 더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나 싶다. 어쩌면 이 망할놈의 바이러스가 나와 우리아이를 집안에서만 묶어두는게 아닌가 싶다가도, 그렇다 보니 덜 걷고 덜 움직이니 안정기까지 조용히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임신전의 내 생활들을 뒤돌아 보면 운동도 많이했고 워낙 활동적이어서 빨리걷고 빨리 움직이고 그랬었다. 임신을 하고 나서 천천히 움직이려는게 꾀나 쉽지 않았다. 왜 천천히 움직여야 하는지 까지 이해하는데도 꾀나 시간이 걸렸지만 12주가 넘어가니 내 몸이 "천천히" 라는 말을 계속 하고있었다.
15주에 접어들때 즈음, 집콕을 제데로 하기 시작했다. 이전까지는 이틀에 한번 삼일에 한번씩 마스크를 쓰고 강아지 산책정도는 했었다. 그 이상의 거리도 남편과 함께 걸을때가 많았는데 확실히 주수가 많아지면서 내 체력도 쇠약해졌다. 마스크를 쓰며 오래 걷기란 정말 힘이 들었다.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싶어 사람없는 잠깐의 틈을 타 마스크를 벋고 싶다가도, 이 잠시로 인해 혹시나 공기중에 바이러스에 감염이 되지 않을까 등등 생각만 많아지고 불안감만 많아졌다.
12주 부터 14주, 15주 에 거쳐 배 통증이 엄청 심했다. 배 앓이 라고도 말할수 있는 이 느낌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느껴보는 느낌이었다. 생리통도 없고, 자궁쪽 문제가 있어서 산부인과를 딱히 다녀본적이 없는 나로써는 너무나 힘든 시간이었다. 아마 출산때 느끼는 진통이 이런 느낌의 몇십배 몇백배가 아닐까? 출산 전에 미리 알아두고 느껴보라고 하늘이 만들어낸 임신 과정일수도 있겠다는 재밌는 생각도 해보았다. 자궁쪽, 그러니까 생리통처럼 비슷한 느낌에 무언가가 내 아랫부분을 자극하는데 마치 콕콕 쑤시는 이 느낌은, 빨래를 쥐어짜듯 내 자궁을 누군가가 잡고 힘차게 꽈버리는 느낌이었다.
재빨리 누워야 고통이 덜하고, 이 느낌은 짧게는 1분, 길게는 3분에서 5분 간격으로 왔다가 사라지는데 중간에 뱃속에서 물컹한게 움직이는느낌, '꾸루룩' '꾸루룩' 공기가 빠지는 소리도 함께 난다. 통증이 오는 그 순간은 나도 모르게 엉덩이를 들어 최대한 배 부위를 수축하게 만들어 통증을 잊으려 노력했다. 분명 태아가 움직이고 있는것 같았고 그게 임신초기라 자궁이 작아서 더 아프게 느껴지는 과정같았다. 나중에 의사한테 물어보니 내가 마른 체형이라 남들보다 유난히 더 많은 통증을 느끼는거라며 임신과정중에 하나일뿐, 딱히 방법은 없고 그냥 먹고 바로 눕지 말라고만 말했다. 네이버도 그것보다는 잘 대답해주겠다는 생각에 화가 났지만, 그래도 미국에서 출산을 위해 준비를 하려면 이런 문화와 반응에 적응해야 했다.
태아가 잘 자라고 있다는걸 확실하게 느끼게 해주는 고통이 아닐까 싶은데 처음 시작되었을때는 20분 정도 아팠고, 그 뒤로는 30분에서 40분 정도 배앓이를 했다. 남편은 울고있는 내 옆에서 그냥 바라만 보며 배위에 손을 올려주었는데 그게 그렇게 힘이 될수가 없었다. 코로나 사태로 24시간 함께있는 남편이 내 임신과정을 하나하나 볼수있다는것도 얼마나 축복된 일인가. 남편 회사 가고 혼자 집에 있을때 이런 심한 배앓이를 했다면 그저 '나 배앞팠어' '너무 아파서 울었어' 이정도로 남편은 받아들였을것 같다.
내 몸에 변화, 그리고 통증, 작은것 하나까지도 남편과 함께 했다. 샤워를 하고 나오면 당당하게 나온 배를 보여주며 거실을 활보하였고, 조절할수 없는 가스가 나오면 마구 배출했다. 방귀를 부부사이에 참지 않고 마구 한다는 그 자체를 극도로 싫어하는 남편이었지만 처음과는 달리 우리 아이방구냐며 이젠 반응조차 하지 않게 되었다. 나 역시 남편과 방귀를 틀 마음이 전혀 없었는데 임신을 하고 나니 그게 조절이 되지 않는 순간이 있었다.
임신을해서 몸이 변해가니, 남편이 이제 여자로 보지 않을까 걱정을 하는 여성들이 너무 많다. 임신이 자연스럽고 위대하고 신비스러운 것이라는 인식이 한국인에게는 서양인보다 없는게 맞다. 그 이유를 가만히 생각해보면, 문화 차이일수도 있겠지만, 임산부인 우리가 먼저 너무 많은것을 오픈하지 않아서 생기는 인식이 아닐까? 미국에서는 임산부들이 일반 여성들처럼 노출을 하며 다니는것을 흔히볼수있다. 가슴이 파인옷, 드레스 심지어는 배꼽티까지. 한국에서는 그렇게 입고 다니면 엄마한테 등짝을 맞겠지? 여름이 되면 해변가에 만삭의 임산부들이 비키니를 입고 누워서 태닝을 하고 물속에 들어갔다 나오는 모습도 흔히 볼수가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 만약 부산 해운대쯤으로 생각해보고 임산부들이 그러고 다닌다면 분명 눈쌀을 찌푸리는 사람들이 있을것이다. 사진 찍어서 인스타에 조롱하는 글이 올라올지도. 왜? 왜 그럴까? 왜 만삭의 임산부는 비키니를 입으면 안되고 노출도 남들처럼 하면 안될까?
임신을 해서 우울하다는 말을 남편한테 수시로 했다. 몸이 무거워지니 만사가 귀찮다고도 했다. 일부러 더 힘들어 하는척도 하고 이거해달라 저거해달라 남편을 시켜가며 몸을 사렸다. 요리도 가르치고 입맛이 없다며 밥을 차려 달라고도 하니 남편은 곧잘 따라주었다. 입덧때 마냥 뭐가 먹고 싶어도 코로나때문에 식당들이 문을 닫고, 그나마 배달은 되지만 그 음식들 마저 찝찝해서 먹지를 못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내 입맛조차 없애 버린 셈이다. 얼마 안되는 그 몇주전을 생각하면 슬프기도 하지만, 앞으로 더 많은걸 남편한테 부탁해야지 생각했다. 흔한말로 '부려먹는다' 가 아닌, 남편이 당연하게 나를 잘 도와주게끔 만들기 작전?
사실 한국여성이라면 너무나 위대한 파워, 그러니까 우리 엄마들을 닮아 혼자서도 너무 잘한다. 한국여성은 남편밥도 차려줘야 하고 아이밥도 차려줘야한다. 왜 그래야 할까? 우리 언니만해도 혼자서 너무 잘해서 임신내내 형부를 힘들게 하지 않았다. 꼭 힘들게 해야만 하는게 아니라, 육아가 힘들다는걸 절대 모르는 형부가 그래서 태어난거다.
우리 아빠도 엄마가 우리를 키울때 육아를 하나도 안도와줬다는걸 조카가 태어나고 나서 알았다. 아빠가 조카를 대하는 태도, 그리고 언니에게 '똥쌌다 기저귀갈아라' '운다 안아줘라' 하는것을 보면서 왜 저건 엄마가 다 하냐고 아빠도 해야지 라는 내 말에 언짢아 하시던 그 모습, 참 신기했다. 그런것들을 보니 생각이 많아졌고, 난 절대로 남자들이 육아는 여자의 몫이며 그것들을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는 꼴을 보고 살지는 않을거다. 지금부터 조금씩 남편을 만들어놔야 한다. 최대한 남편을 활용하는 똑똑한 임산부가 되자. 우리모두 화이팅!
사실 나는 마른체형이라 조금만 배가 나와도 신경이 쓰이곤 했었다. 임신사실을 알게된 직후 부터 괜시리 배가 나오는 느낌이 들었다. 7, 9 주차때 병원을 방문 하였는데 그 사이에 벌써 5키로나 쪘다는걸 알수있었다. 똥배도 겨울이면 나오던 똥배 수준이 아니었다. 살짝 배꼽쪽 윗배가 함께 나오기 시작했다. 사진을 찍어 언니와 동생한테 카톡으로 보내봤지만 동생은 본인의 배보다는 조금 나왔다며 웃어 넘기고, 출산경험이 있는 언니는 지금은 배 나올때 아니라며 내 배는 임신배가 아니고 똥배라고 얘기했다.
임신사실은 아직 부모님께 알리지 않고, 입이 간질거려 언니와 동생에게만 먼저 얘기했었다. 따로 얘기하기 귀찮아서 카톡 단체방을 만들어 임신에 관련된 내 상태를 듣고 싶어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일방적으로 매일매일 카톡을 보냈다. 엄마아빠에게 남편과 함께 임신사실을 알린뒤, 그나마 조금 덜 보내게 되었지만..
자고 일어났는데 팬티 안쪽이 사타구니 사이로 끼기 시작했다. 청바지 같은 진 종류는 아예 입을수도 없었고 배가 불편했다. 아직 임부복을 사기엔 이르나, 생각날때 미리 안해두면 나중에 의무적으로 쇼핑 해야 하니, 지금 사두어야 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미국 임부복 속옷도 괜찮지만, 한국 사이트에서 주문했다. 임부복 원피스랑 속옷등을 주문하니 약 15만원정도가 나왔다. 친정집으로 주문해 배로 받을 예정인데, 엄마는 벌써부터 이런거 시킨다며 혼을 냈다. 안정기도 아닌데 애기용품 임부용품을 시킨다고 자꾸 잔소리를 해서 괴로웠다. 내가 이것때문에 임신사실을 늦게 말하고 싶었으나, 어쩔수 없이 고스란히 카톡으로 잔소리는 들어야만 했다.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가 한국에서 심각해지고 있었던터라, 빨리 보내달라고 제촉했다. 결국 엄마는 언니의 아들인 손자를 보러 가시는 길에 동생과 함께 우체국에 들리셨다. 그렇게 2월이 지나지 않은 시점, 내 임부복과 미역등을 선박으로 보내주셨다. 속옷들이 불편해 지는 시기, 봄이 오는시기에 입으면 딱이겠구나..
임신의 기쁨을 누리기도 전에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세계를 강타할 조짐이 보였다. 런던에서 오자마자 뉴스를 보니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바이러스가 수많은 사람들을 아프게 하고 있었다. 남편한테 미국도 금방 퍼질거 같다며 걱정을 했는데 남편은 그냥 다른 미국인들처럼 다른나라 이야기 쯤으로 생각했다. 2월초 중국연휴가 있어 수 많은 사람들이 중국을 방문했을텐데 그 많은 사람들이 미국에 들어올것들을 걱정했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그것을 알턱이 있나 싶었지만 나혼자 계속 중국에서 오는 비행기를 막아야 한다고 남편을 잡고 얘기했다. 남편은 이해할수없다는듯 내 얘기를 들었고, 내 예감은 곧 미국에서의 크나큰 재앙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임신7주부터 시작된 나의 입덧은 임신 11주까지 이어졌다. 처음에 입덧이라하면 무조건 변기통을 붙잡고 안을 비워야만 하는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겪어본 입덧은 전혀 달랐다. 냄새가 예민해 지는건 맞다. 하지만 난 원래 부터 냄새에 극 예민한 타입이라 임신해서 냄새를 더 잘 맡는다는걸 느끼지 못했다.
하루는 침대에 누워있는데 남편이 냉장고 문을 열자 그 안에 있던 어떤 특정 냄새가 났다. 갑자기 속이 미식거렸다. 밥통에 밥을 하니 밥냄새가 그렇게 싫고, 잠을 잘때 신랑의 숨 냄새 까지도 싫었다. 술을 많이 마신 다음날 속이 너무 비어있고 미식거려 음식을 아무것도 먹지 못할때의 기분, 그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내가 느낀 입덧은, 속이 안좋다고 안먹으면 더 미식거려, 무언가를 먹어야만 한다 생각했다. 들어가는것이 없으니 비스켓을 먹었고 중간중간 루이보스 보리차와 두유를 마셨다. 그러다 보니 입덧이 쭉 이어졌지만 음식은 꾀나 가리지 않고 먹을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11주에 가까워지면서 음식도 넘기기 힘들어지고 입맛도 없어지자, 일본마켓에서 카스테라빵을 잔뜩 사왔다. 이상하게도 카스테라는 부드럽게 잘 넘어간다. 점심 저녁을 제데로 못먹어 속이 안좋으면 아이스크림을 먹어 속을 진정시켰다. 차갑고 달콤한게 들어가니 기분이 좋아졌다.
변비는 나를 괴롭게 만들었다. 푸룬주스도 마셔보고 바나나랑 딸기에 우유를 넣어 갈아도 마셔봤다. 효과는 한두번 이었지만 변비는 나아지지 않았다. 이러다 도저히 안될거같아서 아마존으로 좌욕할것을 주문했다. 따뜻한 물을 부어 샤워후 물속에 살짝 앉았다. 그렇게 5분정도 몇번을 하고 나니 변비가 사라졌다. 신기하게도 샤워할때마다 샤워기 물줄기를 최대 가운데로 모은 설정으로 바꾼뒤 개구리자세를 하고 쏘아댔다. 한번은 그 자세를 하고 샤워기로 그곳을 지지고 있는데 강아지가 급 습격하듯, 화장실문을 쳐내며 들어왔다. 화장실 앞에 큰 거울이 있는데 반사되어 보이는 남편이 소파에 앉아있었다. 잽싸게 샤워커텐으로 모습을 가리며 강아지한테 '뭐야~ 이러면 어떻게 나만의 프라이버시라고" 화를 냈는데 지금 생각만 해도 너무웃기다. 밖에선 남편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7주후 병원예약은 4주뒤인 11주였다. 미국은 한국과달리 4주에 한번씩 첵업을 한다. 한국은 2주에 한번씩 하는 분위기던데 사실 7주에 작은 아기를 보고난 뒤라 4주가 너무 길게 느껴졌다. 4주에 한번씩 첵업을 하고 32주가 넘어가면서 부터는 2주에 한번, 막달엔 일주일에 한번씩 병원스케줄이 되어있었다. 7주에서 4주가 지난 11주에 병원을 다시 방문하니 사람 형태의 아이가 내 뱃속에 있었다.
미국은 간호사들이 초음파를 해준다. 의사가 해주는 한국과는 정말 다른 시스템인데, 혈압을 봐주는 간호사가 따로 있고 초음파를 해주는 간호가가 따로있다. 이 두가지를 초음파실에서 마치면, 대기 하고있다가 의사를 만나러 의사 방으로 들어간다. 의사는 초음파 해주는 간호사가 찍은 여러컷들을 확인한 후에 이런저런 설명을 해준다. 네이버에 치면 나올법한 그런 뻔한 내용들을 듣고있지만 그래도 의사가 얘기해 주니 안심이 된다.
7주차때 임신 확인을 하고 피를 뽑지 않아 이번에 뽑는가 했더니 다음에 와서 한꺼번에 하자고 했다. 그 다음이라 함은 1주일 지난 뒤 인데, 그 이유는 12주 정도에 피를 뽑아 1차 기형아 검사를 하고 성별확인도 피검사로 인해 가능해서 였다. 11주 애매한 주수에 간 나는 태아의 목뒤 투명도를 사진으로 담지못해 12주에 또한번 가야했다. 초음파 간호사가 거의 20분 정도 태아를 움직여서 찍으려 했으나 결국 못찍어서 다시 오라고 했고, 그 덕에 아이모습을 오래 볼수 있었다.
흥미로웠던건, 태아가 안움직이자 나한테 기침을 세번 하라고 했다. 이시국에? 기침을 세번 고개를 옆으로 돌려 했더니 그때마다 태아가 붕 뜨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힘들었는지 손으로 눈을 가렸다. 그래서 알았다. 왜 임신하면 감기가 위험한지. 기침을 할때마다 태아가 붕 떴다가 내려 앉는다는걸 누가 볼수 있었을까? 궁금하다면 초음파 하러 갈때 마른기침을 한번 몰래 해보는것도 좋은 아이디어다.